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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한중 우호단체 탐방①] 1942년 충칭서 설립된 한중문화협회를 찾아
1992년 국교 수립 이후 16년 동안 한중관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. 그 뒤에는 국내 여러 민간단체들의 공이 컸다. 한중문화협회, 한중우호협회, 21세기 한중교류협회, 한중친선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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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신경진의 서핑차이나] 타이완 정계의 2인자 쑹추위(宋楚瑜)와 클린턴
▲1984년 미국 아칸소 주지사 클린턴이 타이베이에서 장징궈(蔣經國)과 회견하는 모습, 가운데 통역을 맡고 있는 사람이 쑹추위다. 타이완 정계의 '2인자' 쑹추위(宋楚瑜)는 마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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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현대판 여불위
▲장징장은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다. 교자를 타고 저장성 모간산(莫干山)에 오른 장징장. 김명호 제공 ‘강남제일가(江南第一家)’는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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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장제스가 아끼던 대논객 陳布雷의 비극
▲저장성 교육청장 시절의 천부레이(가운데). 김명호 제공 1947년 여름 국민당의 베이핑싱잉(北平行營) 전파관리소는 중공의 비밀 전파 발신지를 확인했다. 한 주택의 지하실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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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장제스와 천제루의 만남, 그리고 이별
▲1924년 황포군관학교 교장 시절의 장제스(왼쪽)와 천제루. [김명호 제공] 1927년 8월 21세의 천제루(陳潔如)는 장제스(蔣介石)가 권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. “정권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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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‘長征’의 탄생
▲1935년 10월 산베이(陝北) 지역에 도착한 중앙홍군 주력부대. [김명호 제공] 중국을 연상시키는 많은 용어 중 하나가 장정(長征)이다. 흔히 앞에 대(大)자를 붙여 민주 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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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90세 老정객의 못 다 이룬 國共담판
▲장스자오(왼쪽)와 마오쩌둥. 평소 장을 존경했던 마오가 매우 공손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이채롭다. [김명호 제공] 1956년 봄 중국공산당은 건국 후 최초로 국공합작(國共合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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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16] 張學良과 宋美齡(上)
▲시안사변 한달 반 전인 1936년 10월말 뤄양에서 자리를 같이한 장쉐량과 쑹메이링, 장제스 (앞줄 원쪽부터). 김명호 제공 장쉐량(張學良, 1901∼2001)은 1925년 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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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건설 없는 혁명은 정치 불량배들이 하는 짓”
장징장은 한쪽 다리가 불편했지만 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다. 교자를 타고 저장성 모간산(莫干山)에 오른 장징장. 김명호 제공 ‘강남제일가(江南第一家)’는 열 손가락을 다 동원해도 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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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제스가 아끼던 대논객 陳布雷의 비극
저장성 교육청장 시절의 천부레이(가운데). 김명호 제공 1947년 여름 국민당의 베이핑싱잉(北平行營) 전파관리소는 중공의 비밀 전파 발신지를 확인했다. 한 주택의 지하실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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장제스와 천제루의 만남, 그리고 이별
1924년 황포군관학교 교장 시절의 장제스(왼쪽)와 천제루. [김명호 제공] 1927년 8월 21세의 천제루(陳潔如)는 장제스(蔣介石)가 권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. “정권을 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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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長征’의 탄생
1935년 10월 산베이(陝北) 지역에 도착한 중앙홍군 주력부대. [김명호 제공] 중국을 연상시키는 많은 용어 중 하나가 장정(長征)이다. 흔히 앞에 대(大)자를 붙여 민주 대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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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0세 老정객의 못 다 이룬 國共담판
장스자오(왼쪽)와 마오쩌둥. 평소 장을 존경했던 마오가 매우 공손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이채롭다. [김명호 제공] 1956년 봄 중국공산당은 건국 후 최초로 국공합작(國共合作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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張學良과 宋美齡(上)
시안사변 한달 반 전인 1936년 10월말 뤄양에서 자리를 같이한 장쉐량과 쑹메이링, 장제스 (앞줄 원쪽부터). 김명호 제공 장쉐량(張學良, 1901∼2001)은 1925년 6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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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강정구 칼럼 전문] '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?'
'맥아더를 알기나 하나요?' 지금 인천 만민공원에는(자유공원은 한국전쟁 후 만병통치 같은 '자유'라는 말의 범람으로 바뀐 이름임) 맥아더동상 허물기 쪽과 지키기 쪽 사이에 공방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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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공부나 하지 농구는 무슨…] 12. 미국인 코치 번
▶ 1955년 한국을 방문해 대학 농구 유망주들에게 개인기를 전수한 미국인 존 W 번 코치(뒷줄 맨 오른쪽). 뒷줄 맨 왼쪽이 필자. 대학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나는 미국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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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최우석 칼럼] 플러스 역사와 마이너스 역사
베이징(北京)에 갈 때마다 역사박물관에 들르는데 특히 최근세 혁명 부문이 흥미롭다. 아편전쟁에 의한 열강의 침략에서부터 군벌의 대두, 장제스(蔣介石)의 북벌, 일본의 침략과 항일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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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白球와 함께한 60年] (48) 장훈 선수
장훈은 1977년 1월 어머니, 형 부부와 함께 귀국했을 때 기자회견에서 "통산 3천 안타에 도전하겠다"고 야심찬 목표를 밝혔다. 3천 안타는 일본 프로야구 전인미답의 기록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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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문학동네에 살고 지고…] (40)
빼앗긴 땅을 붓으로 되찾지 못한다면 총으로 찾자 -김학철 모국어의 지평은 넓다. 일제가 나라의 땅을 빼앗고 말과 글을 빼앗을 때 말보다는 총으로 되찾겠다고 싸움터로 달려간 젊은이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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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만은 왜 중국과 통일 아닌 독립 추구하나요 본토출신 15% 불과… 토박이 "우리끼리 잘 살자"
신문이나 방송에서 '양안(岸)'이란 말을 자주 들어 보셨죠? 문자 그대로 하면 '두개의 해안'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중국과 대만을 가리키는 용어예요. 대륙인 중국과 섬나라인 대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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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우샤오셴 감독 "안봐줘도 괜찮다 내식 대로 만든다"
대만은 한 해에 자국 영화가 열 편도 만들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 산업이 취약하다. 그런데도 세계 영화계에서 명망을 획득한 명감독을 몇 배출해 현재 영화적으로는 가장 주목받는 국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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허우샤오셴 감독 "안봐줘도 괜찮다 내식 대로 만든다"
대만은 한 해에 자국 영화가 열 편도 만들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산업이 취약하다. 그런데도 세계 영화계에서 명망을 획득한 감독을 몇 배출해 현재 영화적으로는 가장 주목받는 국가 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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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8년 사망 장징궈 전 대만총통 장개석 친아들 아니다
88년 사망한 대만 장징궈 (蔣經國) 전총통 역시 초대 총통이었던 장제스 (蔣介石) 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돼 대만사회를 충격속에 몰아넣고 있다. 특히 이같은 주장이 지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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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실록 박정희 시대] 13.경제 제일주의 "가난 추방은 천명"
민간인이면서 '5.16 혁명주체세력' 으로 통하는 김용태 (金龍泰.72.전의원) 씨는 박정희 (朴正熙) 전대통령의 오랜 술친구였다. 그는 김종필 (金鍾泌.JP) 자민련총재의 서울대